성장&일잘러인문학이 특히 직장인에게 더 쓸모있는 이유

이복연

[들어가기 전에] 사실 인문학이란 게 특정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배우는 학문은 아닙니다. 본질은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토양을 쌓는 것이지요. 하지만 마냥 뜬 구름 잡는 것 같이 보이는 인문학도 쓸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뉘앙스가 이렇게 흐르게 되었습니다.(라고 문화인류학과 출신 문돌이가 말합니다...)


'추상화'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개별적인 사건과 사물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서 이해하는 과정을 '추상화'라고 합니다.

고양이와 코끼리를 묶어서 동물이라고 칭하고, K5와 람보르기니를 자동차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숫자 속에서 규칙성을 찾아내고 하나의 식으로 묶어 함수를 만드는 것도 추상화의 일종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우리는 정해진 과목과 그속에 녹아있는 규칙을 통해 추상화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런 역량을 기반으로 성인이 된 후에는 한 단계 더 높은 추상화를 경험하고 익힙니다. 바로 사람과 사회에 대해 말이죠.

인간은 무려 860억 개의 신경세포가 얽혀서 구성된 실체입니다. 그에 따라 천문학적 조합이 나오게 되고,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라고 해도 절대 똑같은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태생적 차이 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험적 차이 또한 함부로 일반화할 대상은 아닙니다.

즉 특정 인종이나 특정 지역 출신 사람 모두를 일반화하는 것과 같이 사람 그 자체를 추상화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상 그 자체보다는 대상을 관찰하여 얻는 개별적인 인사이트를 추상화 하는 것이 옳은 방법론인 셈이죠.

그리고 이를 가장 일상적으로 익힐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문학'입니다. 그럼 인문학과 추상화는 직장인에게 왜 필요한 걸까요?



1. 비즈니스는 추상화에서 시작된다.


사업과 비즈니스가 본질적으로 추상화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니즈 하나하나에 맞춰 제품/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봅시다. 당사자의 만족도는 아마도 매우 높겠죠. 하지만 제품/서비스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우선 맞춤 서비스에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모될 것이고, 동일한 서비스를 표준화해서 반복 제공하는 것 또한 쉽지 않겠죠. 학원보다 과외가 더 비싼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추상화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고객 개인별로 다른 니즈 사이를 관통하는 특징을 찾고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낸 뒤 이를 기반으로 제품/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죠.

물론 맞춤 서비스만큼 만족도가 높지는 않을 것이고 초기 제작 비용 또한 맞춤보다 훨씬 많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반복하고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죠. 게다가 고객별 대응 가격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 큰 매출을 노릴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디지털화된 지식이나 서비스가 입소문이나 네트워크 효과를 획득할 정도로 규모를 확보하게 되면, 사실상 Incremental cost가 제로이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무한대의 매출 확장을 노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방식은 개별 고객 입장에서는 1) 충분히 케어받지 못한다는 불만, 그리고 2) 제품/서비스에서 어떤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들은 개인화된 서비스라는 '느낌'을 슬쩍 끼워넣기도 합니다. 쿠팡이 로켓배송 초기에 고객들에게 손편지를 남겼던 것처럼 말이죠.

추상화와 비즈니스에 대한 다른 케이스를 한 번 살펴봅시다. 


2. 추상화와 비즈니스에 대한 예시


교양 수업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고 해봅시다. 같은 수업을 들으니까 조별 활동을 같이 해도 되고, 아니면 그냥 얼굴에 철판깔고 아는 척도 하면서 친해지면 되죠.  하지만 같은 수업이 아니라 다른 수업, 다른 과, 다른 학교,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사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연결에 관한 욕구로 정의해봅시다. 그때부터는 어떤 제품/서비스로 이런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죠. 개발 비용이나 고객 확보 등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걸 실현하면 바로 페이스북이 되는 거죠.

중국집 사장님은 가게 배달부 K를 생각하면 속에 열불이 납니다. 맨날 딴 짓 한다고 배달도 느릿느릿한데 걸핏하면 땡땡이에 결근까지 머리가 아프죠. 손님들은 맨날 시켜먹는 여기 말고, 다른 집과 새로운 메뉴가 궁금합니다.

중국집에는 표준화와 대행에 관한 욕구가, 손님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에 관한 니즈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이 두 가지 욕구를 연결하고 확대시키면 바로 배달의 민족같은 서비스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표준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 결국 고객들의 인식 속에서 개별 업체나 제품/서비스의 존재감은 희미해집니다.

주문은 배달의 민족으로, 음식은 전문 라이더가 갖다주니 고객은 우리 동네 '만리장성'이 아니라 '저번에 시켰던 거기'정도로 기억하게 되죠. 즉 고객과 음식점 사이 접점이 사라지게 되는 셈입니다.

중국집 사장님 입장에서는 리뷰와 사은품, 때로는 맛있게 잘 먹으라는 손편지로 Customization의 느낌을 주고 과도한 추상화에 따른 위험성을 낮춥니다.

반대로 배달의 민족 입장에서는 개별 식당과 고객 사이 관계가 너무 밀접해지면 플랫폼의 존재 의의가 약해집니다. 따라서 추상화에 따른 benefit을 제공하는 형태로 위험성을 낮추는데요, 프로모션 쿠폰이 대표적입니다.

만리장성 깐풍기 세트를 시키면 근처 족발집 쿠폰이나 배민의 다른 서비스 할인권을 제공하는 식이죠. 


3. 추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 인문학


대부분의 플랫폼 및 콘텐츠 비즈니스는 물론, 바이오나 로보틱스같이 장기간 집중적인 R&D가 필요한 사업은 결국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1. 고객 개개인의 구체적 니즈를 파악한다.

  2. 니즈를 묶을 수 있는 추상화 키워드를 도출한다.

  3. 그 키워드를 충족시키는 제품/서비스를 만든다.

  4. 초기 고객 확보 및 관계 형성을 통해 입소문과 네트워크 효과를 만든다.

  5. 대량 생산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되, 고객별 Custimizing 된 부분을 추가해 고객 로열티를 최대화한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스테이지는 바로 1과 2, 즉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추상화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인문학은 이 부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복연 코치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 University of Minnesota MBA
  • 한국 IBM 소프트웨어 마케팅, 삼성 SDI 마케팅 인텔리전스, 롯데 미래전략센터 수석
  • 저서
    -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30문 30답 (2022)
    - 뉴 노멀 시대, 원격 꼰대가 되지 않는 법 (2021)
    -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2020)
    - 일의 기본기: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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