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MF 사태 ~ 팬데믹까지의 흐름
IMF 사태는 개인과 가정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사회 전체로 보자면 부정적인 영향만 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잔존해있던 '전근대적 요소'를 청산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외형만 현대였지 군부독재를 비롯한 권위주의, 그리고 부족 국가적 특성이 혼재되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IMF는 '예전 방식은 잘못됐다'는 공감대를 강제적으로 만들어냈고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강제적으로 현대화가 시작되면서 기업 환경도 변했다. 문어발로 사업을 확장하던 대기업들은 처음으로 '선택과 집중'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상호출자나 순환출자로 총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기는 서서히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변화의 에너지가 처음으로 제대로 집중되면서 삼성은 TV 시장에서 글로벌 1등이 되고 메모리 사업을 장악했으며,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 재도전하면서 나름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실물 제품보다 해외 시장 진입에 시간이 걸리는 문화 상품들 또한 2010년대 이후 두각을 나타냈고 이런 폭발의 끝에 있는 방산분야 또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글로벌 경쟁의 기반이 되었던 한국의 인적 에너지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은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한 때 세계 최고를 다투던 배터리, 석유화학 또한 중국으로 무게추가 넘어가는 모양새고 유통업 또한 오프라인은 코스트코에, 온라인은 알리 등에 밀렸다. 특히나 유통업은 대형 쇼핑몰과 편의점을 제외하면 가혹한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왕자의 난, 계열 분리를 겪으며 여력을 소진한 탓에 본업에서의 수직 계열화에만 집중했던 현대차그룹, 공동 창업자 가문과의 분리를 통해 전자, 화학에 집중한 LG, 그리고 중공업과 군수분야만 바라본 한화 등은 수많은 이종 사업에 ROE를 깨먹은 다른 대기업보다 상황이 나아보인다. 물론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롯데, 신세계, CJ 등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는 뜻.
2. 오늘날 다시 떠오른 '선택과 집중'
그동안 해결한 줄 알았던 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지배구조'라는 이슈는 다시 2024년 오늘의 과제가 된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의 올림픽 성적부터 시작해서 프로야구나 농구에서의 일본과의 격차, 지방 공단 및 조선소에서의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 R&D 인력의 엑소더스 등의 현상은 우리나라가 그동안 100만 명의 인력에 의해 굴러가던 산업들을 더 이상 지켜낼 수 없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
각 산업 분야에 뛰어들던 인력의 머릿수는 물론이고 경쟁력도 줄어드는데 예전처럼 사람을 쥐어짜지도 못하게 되면 필수재가 아닌 영역부터 차츰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된다. '맞이하게 된다'라고 한 것은 구조조정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력과 인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요가 불투명한 사업은 당연히 도태될 것이다. 그나마 수요가 보이는 영역은 유지하겠지만 가격 인상은 피할 수 없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최근 면세점 업계가 안 좋다는 소식을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면세점에 주요 고객이던 외국인, 특히 중국에서 수많은 유통망이 구축되고 강화되면서 굳이 우리나라 면세점에 와야 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고 이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부 상황은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논리는 온오프라인 유통, 그리고 서비스 관련 산업에 적용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인구도 줄고, 수요도 줄고, 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사업은 그래서 결국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된다.
3. 지배구조 이슈가 가져온 나비효과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우리 사회 많은 부분이 선진국화 되었지만 지배구조만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문어발식 포트폴리오 버릇을 버리지 못했으며 경쟁력 여부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3세, 4세에게 기업을 물려주려고 무리를 한다.
대기업의 이런 구조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라면 AWS나 세일즈포스가 사업을 시작할 수나 있었을까? 그냥 외주 개발 업체로 끝났을 것이다. 대기업들 모두 사내 SI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탓에 IT 서비스에 특화된 대형 소프트웨어, 또는 SaaS 서비스의 출현을 기대하기엔 힘드니까.
사회적 혼란이고 뭐고 일단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에는 경쟁력이 부족한데도 단지 '그룹사'라는 이유만으로 산업 내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ROE를 떨어뜨리는 계열사들의 존재는 그룹 주력 사업의 경쟁력 약화, 소액 주주들의 부정적 시선,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의 성장 기회 박탈이라는 이중 삼중의 문제를 일으킨다.
4. 글로벌 트렌드와 우리 기업들
IMF 이후 어느 정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모두 글로벌 스케일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주력 사업을 전세계의 도전에서 지켜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이런 맥락에서 지배구조에서 이슈를 일으킨다는 것은 적절하지는 않다. 지금보다 더욱 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북미에서도 GE나 일론 머스크처럼 하나의 우산 밑에 이종 사업들을 묶는 흐름이 있기는 하다. 선단식 혹은 Corporate라고 부르는 방식이 가지는 장점도 물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가총액 20위까지를 살펴보면 이런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은 테슬라(정확히는 CEO가 여러 사업을 하는 것)와 텐센트 정도이고 나머지는 자기 사업 영역이 명확한 업체들이다. 50위로 확대해도 이런 추세는 그리 다르지 않다.
대기업이 안방 호랑이 그 이 상을 원한다면 개별 사업에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규모를 성장시켜야 한다. 이건 경영자가 수많은 이종 사업을 돌보느라 시간을 쪼갤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 집중해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잡다한 사업을 묶어놓은 이유로 '시너지'를 내세우지만, 그 시너지란 것이 실재한다면 글로벌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 대부분이 이런 형태를 갖췄을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국내 대기업 순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향후 10년은 다르지 않을까.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삼성이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반면에 현대차가 로봇기술을 통해 생산 과정을 혁신한다던가 아니면 차세대 모빌리티 플랫폼에서 돌파구를 찾아낸다면? 혹은 한화가 방산과 우주 분야에서 꾸준히 성과를 올린다면?
기업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글로벌 경쟁의 격화,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인구 감소와 같은 변화는 사업 영역을 좁히고 역량을 집중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고 단지 뒤따라가기만 할 뿐이라면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IMF처럼 필요 이상의 충격파를 만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이런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것은 물론, 새롭게 출발하는 스타트업들에게도 더 많은 공간이 열리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 같다. 아직은 희망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미매뉴얼에서는 월 2회, 격주로 'C라운지'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비즈니스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행 소식은 여기(클릭)를 참고해주세요:)
이복연 코치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 University of Minnesota MBA
- 한국 IBM 소프트웨어 마케팅, 삼성 SDI 마케팅 인텔리전스, 롯데 미래전략센터 수석
- 저서
-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30문 30답 (2022)
- 뉴 노멀 시대, 원격 꼰대가 되지 않는 법 (2021)
-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2020)
- 일의 기본기: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 (2019) - e-mail : bokyun.lee@pathfindernet.co.kr
- SNS : Facebook
1. IMF 사태 ~ 팬데믹까지의 흐름
IMF 사태는 개인과 가정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사회 전체로 보자면 부정적인 영향만 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잔존해있던 '전근대적 요소'를 청산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외형만 현대였지 군부독재를 비롯한 권위주의, 그리고 부족 국가적 특성이 혼재되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IMF는 '예전 방식은 잘못됐다'는 공감대를 강제적으로 만들어냈고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강제적으로 현대화가 시작되면서 기업 환경도 변했다. 문어발로 사업을 확장하던 대기업들은 처음으로 '선택과 집중'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상호출자나 순환출자로 총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기는 서서히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변화의 에너지가 처음으로 제대로 집중되면서 삼성은 TV 시장에서 글로벌 1등이 되고 메모리 사업을 장악했으며,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 재도전하면서 나름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실물 제품보다 해외 시장 진입에 시간이 걸리는 문화 상품들 또한 2010년대 이후 두각을 나타냈고 이런 폭발의 끝에 있는 방산분야 또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글로벌 경쟁의 기반이 되었던 한국의 인적 에너지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은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한 때 세계 최고를 다투던 배터리, 석유화학 또한 중국으로 무게추가 넘어가는 모양새고 유통업 또한 오프라인은 코스트코에, 온라인은 알리 등에 밀렸다. 특히나 유통업은 대형 쇼핑몰과 편의점을 제외하면 가혹한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왕자의 난, 계열 분리를 겪으며 여력을 소진한 탓에 본업에서의 수직 계열화에만 집중했던 현대차그룹, 공동 창업자 가문과의 분리를 통해 전자, 화학에 집중한 LG, 그리고 중공업과 군수분야만 바라본 한화 등은 수많은 이종 사업에 ROE를 깨먹은 다른 대기업보다 상황이 나아보인다. 물론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롯데, 신세계, CJ 등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는 뜻.
2. 오늘날 다시 떠오른 '선택과 집중'
그동안 해결한 줄 알았던 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지배구조'라는 이슈는 다시 2024년 오늘의 과제가 된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의 올림픽 성적부터 시작해서 프로야구나 농구에서의 일본과의 격차, 지방 공단 및 조선소에서의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 R&D 인력의 엑소더스 등의 현상은 우리나라가 그동안 100만 명의 인력에 의해 굴러가던 산업들을 더 이상 지켜낼 수 없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
각 산업 분야에 뛰어들던 인력의 머릿수는 물론이고 경쟁력도 줄어드는데 예전처럼 사람을 쥐어짜지도 못하게 되면 필수재가 아닌 영역부터 차츰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된다. '맞이하게 된다'라고 한 것은 구조조정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력과 인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요가 불투명한 사업은 당연히 도태될 것이다. 그나마 수요가 보이는 영역은 유지하겠지만 가격 인상은 피할 수 없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최근 면세점 업계가 안 좋다는 소식을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면세점에 주요 고객이던 외국인, 특히 중국에서 수많은 유통망이 구축되고 강화되면서 굳이 우리나라 면세점에 와야 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고 이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부 상황은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논리는 온오프라인 유통, 그리고 서비스 관련 산업에 적용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인구도 줄고, 수요도 줄고, 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사업은 그래서 결국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된다.
3. 지배구조 이슈가 가져온 나비효과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우리 사회 많은 부분이 선진국화 되었지만 지배구조만은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문어발식 포트폴리오 버릇을 버리지 못했으며 경쟁력 여부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3세, 4세에게 기업을 물려주려고 무리를 한다.
대기업의 이런 구조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라면 AWS나 세일즈포스가 사업을 시작할 수나 있었을까? 그냥 외주 개발 업체로 끝났을 것이다. 대기업들 모두 사내 SI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탓에 IT 서비스에 특화된 대형 소프트웨어, 또는 SaaS 서비스의 출현을 기대하기엔 힘드니까.
사회적 혼란이고 뭐고 일단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에는 경쟁력이 부족한데도 단지 '그룹사'라는 이유만으로 산업 내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ROE를 떨어뜨리는 계열사들의 존재는 그룹 주력 사업의 경쟁력 약화, 소액 주주들의 부정적 시선,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의 성장 기회 박탈이라는 이중 삼중의 문제를 일으킨다.
4. 글로벌 트렌드와 우리 기업들
IMF 이후 어느 정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모두 글로벌 스케일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주력 사업을 전세계의 도전에서 지켜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이런 맥락에서 지배구조에서 이슈를 일으킨다는 것은 적절하지는 않다. 지금보다 더욱 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북미에서도 GE나 일론 머스크처럼 하나의 우산 밑에 이종 사업들을 묶는 흐름이 있기는 하다. 선단식 혹은 Corporate라고 부르는 방식이 가지는 장점도 물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가총액 20위까지를 살펴보면 이런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은 테슬라(정확히는 CEO가 여러 사업을 하는 것)와 텐센트 정도이고 나머지는 자기 사업 영역이 명확한 업체들이다. 50위로 확대해도 이런 추세는 그리 다르지 않다.
대기업이 안방 호랑이 그 이 상을 원한다면 개별 사업에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규모를 성장시켜야 한다. 이건 경영자가 수많은 이종 사업을 돌보느라 시간을 쪼갤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 집중해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잡다한 사업을 묶어놓은 이유로 '시너지'를 내세우지만, 그 시너지란 것이 실재한다면 글로벌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 대부분이 이런 형태를 갖췄을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국내 대기업 순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향후 10년은 다르지 않을까.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삼성이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반면에 현대차가 로봇기술을 통해 생산 과정을 혁신한다던가 아니면 차세대 모빌리티 플랫폼에서 돌파구를 찾아낸다면? 혹은 한화가 방산과 우주 분야에서 꾸준히 성과를 올린다면?
기업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글로벌 경쟁의 격화,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인구 감소와 같은 변화는 사업 영역을 좁히고 역량을 집중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고 단지 뒤따라가기만 할 뿐이라면 구조조정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IMF처럼 필요 이상의 충격파를 만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이런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것은 물론, 새롭게 출발하는 스타트업들에게도 더 많은 공간이 열리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 같다. 아직은 희망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미매뉴얼에서는 월 2회, 격주로 'C라운지'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비즈니스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행 소식은 여기(클릭)를 참고해주세요:)
이복연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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