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시대에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기계나 핵심 프로세스는 어지간하면 자동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해보면 제조업 회사들의 생산력도 거의 비슷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K-9 자주포 생산을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군수산업분야 대기업 중 하나인 한화는 1년에 약 240대 내외의 자주포를 생산하는데, 해외 경쟁사는 채 10대도 못 만든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생산 라인의 수나 활성화 정도 등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점을 고려해도 유사한 기계를 운용하는 노하우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비슷한 예로 KF-21 생산 과정을 들 수 있다. 전투기는 설계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파트를 결합하는 조립 프로세스의 정밀도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KAI는 FASS라고 불리는 동체자동결합시스템을 통해 이 프로세스를 진행하는데, 조립 시간을 절반 이상 줄인 것은 물론이고 품질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반면에 미국 보잉사도 FASS를 이용한 생산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기존 라인 운영과 충돌하는 바람에 오히려 생산성이 후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즉, 제조업에서는 자동화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 및 노동자의 노하우가 차별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 또한 자동화와 운영 노하우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결합을 순조롭게 이뤄내고 또 경쟁력 있는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세 가지 이슈를 고려해야 한다. 고객 요구에 대한 대응, 혁신적 아이디어에 기반한 경쟁자에 대한 대응 여부, 마지막으로 고객과의 이해 충돌 가능성이 그것이다.
1. 고객의 요구에 대한 반응 여부
제조업하면 역시나 TSMC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TSMC는 수많은 장점을 가진 훌륭한 회사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바로 '고객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제조업체들도 잘 대응하는 편이니 지금까지 순조롭게 발전했겠지만 최근에는, 특히 B2B업체들은 예전만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TSMC의 고객 대응 얘기를 꺼내면 보통 반응이 '원가가 불리해진다', '인건비 저렴한 대만이니까 가능하지'인데, 이게 정말이라면 TSMC가 지금처럼 영업이익률 40%를 달성할 수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 인건비가 북유럽 수준으로 높다면 이런 한탄도 일리가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 제조업이 지금까지 단순 Scale economy에만 매몰되었던 것은 아닌지, 복잡성을 핸들링할 수 있는 역량을 길렀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즉, 애초에 조직을 복잡하고 세세한 고객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운영했다면 인건비 상승 등의 이슈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 제조업체들이 이 부분에 경쟁력이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고 말이다.
2. 혁신적 경쟁자에 대한 대응 여부
기존에 없었던 혁신적 기술을 가진 경쟁자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이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의 대응은 대단했다. 단 6개월 만에 갤럭시S를 만들어낸 덕분에 노키아같은 운명을 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거다. 젊은 인력이 줄어들고 기업문화가 변한 요즘같은 상황에서도 예전같은 순발력과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면 경영진이 애초에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삼성전자가 자사의 모든 장비에 AI를 넣겠다고 결정한 사항이나,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대응 과정, 하이닉스의 HBM 등을 살펴보면 낙관적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이외에는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방향을 잘 잡는다는 것은 스페이스X가 1단 로켓 재사용에 10년 넘게 집중한 결과, 세계 최고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사례와 같다. 로켓 기술을 마구 개발하다가 하나를 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재사용에만 집중했고 결실을 맺은 거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역량을 집중, 결국 시장을 혁신하는 이런 방식은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그것이다. 다만 대기업은 이런 식의 '도박성' 전략을 실행하기가 힘들다. 특히나 경영자의 상상력이 부족한 경우엔 더욱.
시장이 변하는 만큼 스페이스X같은 혁신 업체들은 점점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바뀌어버린 경쟁 문법을 따라갈수 있을까? 혁신 아이디어에 역량을 집중, 시장을 리딩할 수 있을까?
3. 고객과의 이해 충돌 가능성
예전처럼 문어발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여전히 하나의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대응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단적으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AP에서는 애플과 경쟁하지만 파운드리에서는 파트너가 될 여지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의 주력 사업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한다면, 우리 대기업은 훨씬 다양한 사업을 운영한다.
하나의 사업이 글로벌 스케일이 아니라, 모두 다 합쳐서 글로벌 규모가 되는 식인데, 이런 방식도 분명 장점이 있지만 시장 환경이 복잡해지는 이런 시기에 제조업체에게 적절한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4. 결론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은 강력하다. 하지만 자동화 측면에서 갈수록 고도화되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격화되리라는 점,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특별한 노하우나 기술을 확보하려 해도 젊은 인력의 채용이 어려워지는가하면, 예전처럼 개인의 희생과 일사분란한 조직문화를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높은 자동화율은 특정 생산 방식 및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부작용이 있으니, 혁신적 플레이어가 등장했을 때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위험성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타트업 방식을 참고해서 하나의 사업에 집중, 이것을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방식이 아니라면 경쟁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이런 전략은 기존 대기업 문화와 다르고 리스크도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이나 구조조정이 수반되는 선택이기도 해서 현실적으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적당한 수준에서 규모의 경제로만 승부하는 무난무난한 기업, 그저 그런 국가로만 남게 될 지도 모른다.
기업 경영에서 무난하고 적당하다는 것은 사망선고에 가깝다. 남이 만들어낸 혁신에 휘둘릴 뿐이니 말이다.
※미매뉴얼에서는 월 2회, 격주로 'C라운지'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행 소식은 여기(클릭)를 참고해주세요:)
이복연 코치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 University of Minnesota MBA
- 한국 IBM 소프트웨어 마케팅, 삼성 SDI 마케팅 인텔리전스, 롯데 미래전략센터 수석
- 저서
-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30문 30답 (2022)
- 뉴 노멀 시대, 원격 꼰대가 되지 않는 법 (2021)
-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2020)
- 일의 기본기: 일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 (2019) - e-mail : bokyun.lee@pathfindernet.co.kr
- SNS : Facebook
요즘같은 시대에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기계나 핵심 프로세스는 어지간하면 자동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해보면 제조업 회사들의 생산력도 거의 비슷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K-9 자주포 생산을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군수산업분야 대기업 중 하나인 한화는 1년에 약 240대 내외의 자주포를 생산하는데, 해외 경쟁사는 채 10대도 못 만든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생산 라인의 수나 활성화 정도 등등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점을 고려해도 유사한 기계를 운용하는 노하우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비슷한 예로 KF-21 생산 과정을 들 수 있다. 전투기는 설계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파트를 결합하는 조립 프로세스의 정밀도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KAI는 FASS라고 불리는 동체자동결합시스템을 통해 이 프로세스를 진행하는데, 조립 시간을 절반 이상 줄인 것은 물론이고 품질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반면에 미국 보잉사도 FASS를 이용한 생산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기존 라인 운영과 충돌하는 바람에 오히려 생산성이 후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즉, 제조업에서는 자동화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 및 노동자의 노하우가 차별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 또한 자동화와 운영 노하우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결합을 순조롭게 이뤄내고 또 경쟁력 있는 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으로 세 가지 이슈를 고려해야 한다. 고객 요구에 대한 대응, 혁신적 아이디어에 기반한 경쟁자에 대한 대응 여부, 마지막으로 고객과의 이해 충돌 가능성이 그것이다.
1. 고객의 요구에 대한 반응 여부
제조업하면 역시나 TSMC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TSMC는 수많은 장점을 가진 훌륭한 회사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바로 '고객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제조업체들도 잘 대응하는 편이니 지금까지 순조롭게 발전했겠지만 최근에는, 특히 B2B업체들은 예전만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TSMC의 고객 대응 얘기를 꺼내면 보통 반응이 '원가가 불리해진다', '인건비 저렴한 대만이니까 가능하지'인데, 이게 정말이라면 TSMC가 지금처럼 영업이익률 40%를 달성할 수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 인건비가 북유럽 수준으로 높다면 이런 한탄도 일리가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 제조업이 지금까지 단순 Scale economy에만 매몰되었던 것은 아닌지, 복잡성을 핸들링할 수 있는 역량을 길렀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즉, 애초에 조직을 복잡하고 세세한 고객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운영했다면 인건비 상승 등의 이슈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 제조업체들이 이 부분에 경쟁력이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고 말이다.
2. 혁신적 경쟁자에 대한 대응 여부
기존에 없었던 혁신적 기술을 가진 경쟁자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이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의 대응은 대단했다. 단 6개월 만에 갤럭시S를 만들어낸 덕분에 노키아같은 운명을 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거다. 젊은 인력이 줄어들고 기업문화가 변한 요즘같은 상황에서도 예전같은 순발력과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면 경영진이 애초에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삼성전자가 자사의 모든 장비에 AI를 넣겠다고 결정한 사항이나,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대응 과정, 하이닉스의 HBM 등을 살펴보면 낙관적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이외에는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방향을 잘 잡는다는 것은 스페이스X가 1단 로켓 재사용에 10년 넘게 집중한 결과, 세계 최고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사례와 같다. 로켓 기술을 마구 개발하다가 하나를 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재사용에만 집중했고 결실을 맺은 거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역량을 집중, 결국 시장을 혁신하는 이런 방식은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그것이다. 다만 대기업은 이런 식의 '도박성' 전략을 실행하기가 힘들다. 특히나 경영자의 상상력이 부족한 경우엔 더욱.
시장이 변하는 만큼 스페이스X같은 혁신 업체들은 점점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바뀌어버린 경쟁 문법을 따라갈수 있을까? 혁신 아이디어에 역량을 집중, 시장을 리딩할 수 있을까?
3. 고객과의 이해 충돌 가능성
예전처럼 문어발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여전히 하나의 사업에 집중하기보다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대응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단적으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AP에서는 애플과 경쟁하지만 파운드리에서는 파트너가 될 여지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의 주력 사업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식으로 사업을 운영한다면, 우리 대기업은 훨씬 다양한 사업을 운영한다.
하나의 사업이 글로벌 스케일이 아니라, 모두 다 합쳐서 글로벌 규모가 되는 식인데, 이런 방식도 분명 장점이 있지만 시장 환경이 복잡해지는 이런 시기에 제조업체에게 적절한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4. 결론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은 강력하다. 하지만 자동화 측면에서 갈수록 고도화되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격화되리라는 점,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특별한 노하우나 기술을 확보하려 해도 젊은 인력의 채용이 어려워지는가하면, 예전처럼 개인의 희생과 일사분란한 조직문화를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높은 자동화율은 특정 생산 방식 및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부작용이 있으니, 혁신적 플레이어가 등장했을 때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위험성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타트업 방식을 참고해서 하나의 사업에 집중, 이것을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방식이 아니라면 경쟁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이런 전략은 기존 대기업 문화와 다르고 리스크도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이나 구조조정이 수반되는 선택이기도 해서 현실적으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적당한 수준에서 규모의 경제로만 승부하는 무난무난한 기업, 그저 그런 국가로만 남게 될 지도 모른다.
기업 경영에서 무난하고 적당하다는 것은 사망선고에 가깝다. 남이 만들어낸 혁신에 휘둘릴 뿐이니 말이다.
※미매뉴얼에서는 월 2회, 격주로 'C라운지'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행 소식은 여기(클릭)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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